그간 5번의 이직을 했으니 6개의 다를 회사를 다녔습니다. 옮길 때마다 회사 규모가 커져 결국 국내 벤처회사, 국내 대기업, 해외 대기업에 컨설팅, 유통, IT 서비스까지 다양한 회사와 부문의 이력을 가지게 되었죠. 회사마다 비슷해 보이지만 한 꺼풀 들여다보면 근무 환경과 문화, 임직원에 대한 기대와 성과 평가,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 등 하나도 같은 회사가 없습니다. 심지어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도 평가도 다릅니다. 그래서 새로운 팀으로 옮기거나 새로운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사람들에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팀(회사)에서 성공하기 위한 조언이 있다면 뭔가요? Any advice to build a successful career at this team (company)?

간단한 질문인데 사람마다, 그 사람이 하는 일과 맡은 직책에 따라, 그리고 회사 분위기에 따라 대답이 각양각색입니다. 그래도 여러 번 묻다 보면 회사마다 얼추 분위기가 잡힙니다. 튀지 않고 무난하면서도 상사와의 관계가 좋아야 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함께 일하는 동료와 파트너 팀과의 관계가 우선되는 회사도 있습니다. 온전히 성과 위주로 평가하는 회사도 있지만 결과만큼이나 과정과 태도를 중시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은 '열심히 일하거나 오래 일하거나 똑똑하게 일하거나, 이 중 적어도 두 가지는 해야 해요'라는 말. 사실 이 말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가 1997년 주주총회를 준비하면서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1에서 한 말을 따온 겁니다. 내용은 약간 다르지만 말이죠.

당시 글에서 제프 베이조스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일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면접 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지요. 열심히 일하거나 오래 일하거나 똑똑하게 일할 수 있지만 아마존에서는 세 가지 중 두 가지만 선택할 수 없다고요."

You can work long, hard, or smart, but at Amazon.com you can't choose two out of three. 열심히 일하거나 오래 일하거나 똑똑하게 일할 수 있겠지만 아마존에서는 세 가지 모두 해야 합니다.

Jeff Bezos, Shareholder letter in 1997 (제프 베이조스의 1997년 주주들을 위한 편지에서)

사족을 붙이자면 1997년 편지는 아마존의 첫 주주총회를 앞두고 보낸 첫 주주 편지였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로 25년이 지난 지금 지금도 아마존은 매년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 마지막에 1997년 주주 편지를 함께 보냅니다. 작년 여름,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은퇴하고 새 경영자 앤디 재시(Andy Jassy)가 올해 4월 자신의 첫 주주 편지를 보내면서 역시 1997년 주주 편지를 첨부했지요.*2


열심히 일하거나 오래 일하거나 똑똑하게 일하거나.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셋 중 두 가지를 선택하라면 어떤가요?

체력만큼은 자신 있는 저, 일하는 거 외에는 달리 취미도 없기에 오래 일하는 게 저의 최우선이었지요. 셋 중 두 가지를 선택하라면 오래 일하는 것과 열심히 일하는 것. 열심히 일하는 것의 문제는 들쑥날쑥하다는 겁니다. 시험 날짜 닥쳐서 밤새 공부하는 그저 그런 성적의 학생 마냥, 납기일 전날 혹은 보고서 발표 전날 닥쳐서 하는 못된 습관을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그나마 나아져서 일 떨어지면 바로 계획 세우고 찾아야 할 자료 정리하기 시작하지만 그 노력을 끝까지, 꾸준하게 끌어내지 못하는 건 여전합니다. 막 시작했을 때 그리고 닥쳐서 할 때는 몸과 혼을 갈아 넣듯 열심히 일하지만 평상시에는 띄엄띄엄, 심지어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틀어놓고 일하기도 했습니다. 타이머도 맞춰보고 포모도로(Pomodoro) 테크닉*3도 사용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은 게 바로 저의 '열심히 일하는 정도'입니다.

이쯤 되면 얼추 눈치채셨을 겁니다. 세 가지 중 가장 자신 없는 게 바로 '똑똑하게 일하기'입니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하니 열심히 일하거나 오래 일하는 것과 달리 똑똑하게 일하기는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래 일하는 거야 일하는 시간을 측정하면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기도 마찬가지, 일하는 중간에 딴짓 안 했는지, 집중해서 일했는지 대략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을 끝내고 하얗게 빈 머릿속을 추스르며 '진짜 열심히 불태웠어'라고 가늠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바로 1에서 5까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점수를 매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똑똑하게 일하기'라는 다릅니다. 쉽게 정량화할 수 없고 혼자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일의 결과가 나와봐야 내가 똑똑하게, 효율 좋고 효과적으로 일한 건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하는 중간에는 이 길이 맞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왕왕 있으니까요. 똑똑하게 일한다는 건 게다가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내가 삽질하고 있는지 아니면 영민하게 일하는지는 그걸 바라보고 평가하는 사람의 시각에 의해서 달라집니다. 평균 근로시간이나 평균 일의 집중도 혹은 생산성은 통계자료로도 나오지만 똑똑하게 일하는 평균 수치 같은 건 본 적 없습니다. 그래서 늘 내가 똑똑하게 일하고 있는 건지 고심하고 불안합니다.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찾아보고 둘러보고 물어보며 스스로의 방식을 의심하니 자신 없는 게 당연한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