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1984, 왕가위)’

‘중경삼림(1984, 왕가위)’

중경삼림(重慶森林), 도시속 숲을 헤메이는 사람들

화양연화와 함께 왕가위의 대표작으로 손꼽는 작품인, 중경삼림에서는 주인공인 경찰 223(금성무 扮)이 파인애플 통조림을 먹으면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는 장면이 나온다. 자신의 생일이 유통기한 통조림만 찾아, 매일 1통씩 사먹으며 이별을 정리하는 모습은 사뭇 낭만적이다.

경찰 223은 호텔에서 금발의 여인을 만나 이별을 잊기로 하지만, 결국 스쳐지나가는 인연에 해답은 없었다. 밤새 단절된 시간을 보내고, 경찰 223은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바뀌는 것이니까. 오늘은 파인애플은 좋아하지만 내일은 다른 것을 좋아할 수 도 있다.”

당장은 죽을만큼 사랑했던 사람이, 내일은 죽을만큼 미워질지도 모른다. 수십년간 증오로 가득찼던 관계과 하루만에 뒤바뀔수도 있는 것이다.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순식간에 궤도를 벗어난 크나큰 오답이 될 수 도 있는셈이다. 어느 것 하나 고정적이지 않고, 안정적인 것은 없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동한다.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믿고, 옳다고 생각하고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서짐이 있음을 알고 있거나 혹은 두려워하거나. 그럼에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처럼, 아픔만큼 아름답고, 깨진만큼 단단해진다.

어쩌면 그저 단순한 이별의 과정을 담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는 방황하는 젊음의 모습을 찾아볼 수 도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한없이 부질없는 정(情)을 볼지도 모른다. 어느쪽이여도 좋다. 영화란 그런 것이고, 예술이란 그런 것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