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무엇을 하고 싶기에, 무엇에 관심있는가? 나는 무엇을 모르고 있는가? 왜 망설이고 있는가? 이런 저런 질문들이 우후죽순으로 머릿속을 뒤덮었다. 이정표가 어느 한 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쉼없이 돌아가는 상황이라고 해야할까?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을 언젠가 할 시기가 올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정한 시기는 9월 이후였다. 어느 정도 일도 정리가 되어가고,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기. 그 시기에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너무나도 빠르게 한 여름에 고민의 실타래는 굴러굴러 나에게로 왔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생각했던, 직장에서 나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접은 지 오래다. 아니, 정확하게는 스스로 합리화를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퇴근 이후에는 나의 삶을 살아가고, 출근 이후에는 회사의 일을 충실히 해내는 사람으로써 살아간다면, 나의 성장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한번에 하나에만 신경을 쓸 수 있다. 멀티테스킹의 효율이 그리 좋지 못한 편이라고 보면 좋겠다. 그러나, 신경을 쓰는 하나의 대상에는 사랑과도 같은 힘을 쓴다. 지금도 일하고 있는 메이커스페이스도 그런 대상이다. 어떠한 분야든 신경쓰지 않고 들여다보며, 새로운 생각을 투여하려고 노력한다. 열렬한 짝사랑의 형태로 보면 딱 맞을 것이다. 문제는 사랑의 끝은 이별 혹은 공생이라는 점이다.

지금 하는 일이 아무리 즐겁고, 함께 있는 사람들이 좋아도 결국 내가 평생을 함께할 것이 아니라면,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존재하는 법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평생 직장이 어딨겠냐만, 최소한 향해나갈 방향성은 평생을 함께할 방향성이여야 맞다고 본다. 음식 장사로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잠시 식자재 회사에서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지만, 음향회사에서 오래 있기는 어렵다.

내가 겪는 고민의 원인은 이것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하는 일을 사랑하지만, 평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떠나갈 지, 자기합리화를 할 지 결정해야하는 지점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 평생 하고 싶은 일,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일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경험은 이번 처음은 아니다. 어떻게든 잘 넘어갔지만, 명쾌한 적은 없었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렇게 ‘대단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맞을까 고민한 적이 많다. 경제,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적당히 풀칠은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을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런 ‘대단한 일’은 없다.

전쟁과도 같은 천재지변이 나면, 우리가 지금 하는 일의 70% 이상은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당장 전기는 필수적인 시설에만 사용될 것이고, 수많은 예산은 필수적인 의식주에만 사용될 것이다. 아마 이런 상황을 생각한다면, 군수업, 농업과 같은 정말 기초적인 산업에 종사하는 것이 내가 이전까지 생각했던 ‘대단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참 웃기게도, 우리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전쟁 중에도 사람들은 사랑을 했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으며, 희망을 노래했다. “짜증을 내어서 무얼하나” 라는 가사로 유명한 ‘태평가’는 일제 치하에서 만들어 불러진 노래다. 암울했던 그 시기에도 누군가는 이야기를 쓰고, 사람들에게 환상을 팔았다.

고로, 내가 고민했던 ‘대단한 일’이라는 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니 엄밀히 따지면, 20대의 나는 따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리 생각대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고, 어떻게 흘러갈 지 모르는 것이니깐. 결국 ‘대단한 일’은 내가 하고 싶은 바를 실현 시키는 것이지, 경기나 금전적인 부분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기에. 어느 분야든 대가가 되면, 다른 분야에도 쉽게 진출할 수 있다. 단순한 테크닉이나 배경은 차이가 날 수 있어도, 태도와 시각은 다른 분야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니 말이다. 어쩌면,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핑계를 대면서, 정작 그 분야에서 대가가 될 자신이 없는 스스로를 숨기고 있던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선택할 ‘그리 대단하지는 않아도 평생을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나는 이야기를 쓰는 일을 하고자 한다. 낯선 세계를 보여주고, 그 곳에서 우리 스스로를 만나게 하여,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감동시는 일.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시나리오가 될 수도 있고, 팝업 스토어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매체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가야할, 그리고 가고 싶은 방향이 결정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당장 결과는 좋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써내려간 이야기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고, 심사위원들은 3류도 못되는 작품처럼 생각해, 쓰레기통에 넣을지도 모른다. 잘 다니던 직장은 그만둬, 경제적으로 어려울테고, 애매하게 풀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내가 지금 선택한 일을 내가 진실로 사랑한다면, 버텨낼 것이다. 좋은 운이 올 때까지, 빙빙 돌아서 버티고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운이 좋지 않아, 끝끝내 되지 않는다면 마음 한 켠에 놔둔채 이전까지 생각했던 안정적인 ‘대단한 일’을 하면 될 것이다. 물론 그것도 가능하다면 말이다.

너무 큰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기분이 좋다. 그리 대단하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대단한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휘어지고, 부러지겠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을, QQJJ의 길이 아주 조금 안개가 걷혔다.

2022.07.24

QQJ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