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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A Word

엊그제는 가수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 비디오만 3개, 그리고 많고 많은 장기하의 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음악프로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저, 처음으로 ‘부럽지가 않어'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어찌나 유쾌하던지요.

장기하 - 부럽지가 않어 [유희열의 스케치북/You Heeyeol's Sketchbook] | KBS 220311 방송

그날 이후 요 며칠간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 노래를 귀에 꽂히듯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어떤가, 나는 부러운 게 많은 사람인가, 밥을 먹다가, 샤워를 하다가, 청소기를 돌리다가 생각합니다. 장기하의 노래에서는 십만 원 가진 너는 백만 원 가진 나를 부러워하지만 정작 나는 천만 원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한다고 하지요. 적어도 저는 그 가사에는 해당하지 않겠구나 생각하며 혼자 어깨를 으쓱거립니다. 저보다 풍족하고 여유 있는 친구도 이웃도 동창도 많지만 저는 요즘의 제가 살아가는 하루가 꽤나 만족스럽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해서 나를 위해 목표를 세우고, 작은 변화를 만들고 나름의 성취감을 맛보며 살고 있습니다. (혹시 이것도 자랑인가요? '자랑을 하니까 부러워지고, 부러우니까 자랑을 하고' 가사가 생각납니다.)

딱히 부러운 게 없다고 해서 욕심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욕심이 너무 많아 탈입니다. 하고 싶은 거, 알고 싶은 거, 경험하고 싶은 것이 산더미 같습니다. 가령, 저는 50개 도시 이상에서 한 달 이상 살고 싶고 UN의 공식 언어 6개를 배워 좋아하는 책을 원서로 읽고 싶습니다. 걷고 싶은 트레일은 이미 수십 개, 수영에 서핑도 배워 잘하고 싶습니다. 인생에 읽어야 할 책 100권 같은 리스트는 모조리 읽고 서평을 쓰고 싶으며 제대로 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저의 가장 큰 야심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을 모조리 방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걸 모두 해치운 멋진(!)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딱히 부럽지는 않습니다. 노력과 시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저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에너지를 들여 공부하고 여행하고 운동하고 읽고 글을 썼던 것뿐입니다. 그이들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나도 멈추지 않고 나아갈 뿐입니다. 가끔 제 욕심의 무거움을 견디다 못해 무너지고 가라앉는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아가는 방향을 잊지 않고 오늘 충실히 사는 게 제일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외국어를 공부하고 달리기를 하는 평범한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바로 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저의 노력과 시간입니다. 어차피 하루 이틀에 되지 않을 일, 5년 아니 10년 이상 멀고 길게 바라보며 매일 즐겁게 살고 있기에 부럽지 않은가 봅니다.

반골 기질이 다분한 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부럽지가 않어'라고 말하는 장기하의 노래가 오히려 ‘부러워'로 들리기도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럽다는 생각이 없으면 부러움의 감정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굳이 부럽지가 않다고 몇 번이고 되뇌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일이지요. 어느 순간 부러워하는 자신에게 부럽지 않다고 그 감정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부럽지 않으니 얼마든지 자랑하라는 가사가 없었다면 오해할 뻔했습니다.

덕분에 고민입니다. ‘부러워, 부러워 죽겠어’라는 감정과 ‘부럽지가 않어, 잠이나 자자'라는 생각, 어느 게 나은 걸까요. 부럽다는 감정은 그 부러움을 따라 변화를 일으키고 움직이는 활력소가 될 수 있고 부럽지 않다는 감정은 부러움으로 인한 소모적인 감정과 에너지를 피할 수 있게 합니다. 이리저리 재보다가 깨달았습니다. 질문이 틀렸구나, 어느 게 나은지가 아니라 어느 게 지금 나에게 맞는 건지를 물었어야 했구나 싶습니다. 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사람이, 그리고 처해있는 상황이 다른데 맞다 그르다는 질문은 탁상공론일 뿐입니다. 중요한 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선택하고 결정한 데로 움직일 뿐입니다.

이렇게 딱히 부러운 게 없는 저,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를 들으며 글을 씁니다. 부러운 건 없지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크기에 좀 더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겠다 다짐하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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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 장기하 (Chang Kiha) _ 부럽지가 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