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 내 약점을 다 드러내는 것 같아.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지인이 건넨 말이다. 근데 너는 그렇게 꾸준히 쓰는 이유가 뭐야? 그리고 그가 덧붙인 물음. 전화를 받은 나는 그가 말한 것처럼 글을 쓰고 있었고,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있다. 어쩌면 엉덩이를 의자에 9시간 이상 붙이고 있어야 하는 저주를 받은 게 아닐까… 싶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나는 말을 잘 못해서 글을 쓴다고 싱겁게 답했다.
9월 한 달 동안 쓴 글을 돌아보면 나는 괜찮은 날보다 괜찮지 않은 날이 많았다. 매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놓고 벅차서 이틀에 한 번 글 쓰겠다고 정정했다. 그것조차도 벅차서 3일 넘게 글을 쓰지 않은 주간도 있었다. 매일 쓰던 일기도 쓰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명상하고 책 읽고 난 뒤에 먹던 아침 밥상도 사라졌다. 냄비에 끓여먹는 빨간 라면, 컵라면에 끓는 물 부어 빨간 라면을 번갈아 먹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나는 쉴 틈 없이 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셈이었다. (삐용-삐용-) 본인의 정신과 육체 건강 상태는 메롱입니다. 지금 본인은 아무것도 해낼 힘이 없습니다. 정말이지 쓸모없는 상태입니다. 뭐 이런 식으로. 누가 바람을 부는 것도 아닌데 불안한 마음의 불씨가 자꾸만 번지던 날들. 그래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말을 못 한다는 이유가 약점을 노출하는 단점을 이기는 거야?
음, 오해하고 있는 게… 나는 글 쓰면서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어떤 불안이든 불안일 뿐, 나의 약점은 아니었다. 잠깐 힘이 없을 뿐, 잠시 쓸모없을 뿐, 생각해 보면 바람도 잠깐씩 불어올 뿐이다. 선풍기 틀어놓은 것 마냥 끊임없는 바람이 아니라, 가끔은 태풍이고 가끔은 가을바람으로 같은 바람인데 이름만 바꿔 찾아올 뿐이다.
종종 힘들 때 무얼 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글을 쓴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인의 생각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글을 쓰면 모든 불안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해결된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게 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이유를 모르고 글을 쓴다. 쓰고 있노라면 무언가를 뱉어낸다. 분명히 속에서 웅얼거리고 울고 있는 무언가를 마주하며 쓴다. 힘들구나, 힘들었구나, 힘들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