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지속할 수 없다” 라고 결국 인정하며 3개월 동안 겨우 굴렸던 그림/글 계정을 스톱했다. 그리고 여름 내내 ‘나의 창작’을 찾아가는 고민을 다시 했다. 목표는, 죽어도 여름이 끝나기 전에 다시 시작하기. 몇 달 동안 나 자신과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영감을 얻는 것 등등 여러 가지를 고민하며 정리했다. 다행히도 여름의 끝자락인 8월 30일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이걸 지키다니, 돌아보니 내심 스스로가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서 어쩌다 보니 전시에 참가하게 됐다.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작가로서 드로잉 몇 점을 가지고 전시에 참여한다.

새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림 작업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며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면 분명 잡을 수 없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그림을 그려봤자 너무 늦은 거라며 손을 계속 놓았다면 아쉽게 바라만 봐야 하는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확신이 없어도 시작해 본 작은 시도들이 기회를 잡게 해주었다. 막연히 두려워만 하지 않고 마음이 정해지면 그 방향대로 나아가보려 했던 내게 심심한 고마움을 남긴다.

내게 맞는 방식을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이번에 내게 일어난 가장 중요하고 소소한 변화는 나름대로의 꾸준함이었던 것 같다. 매일 펜은 잡지 못하더라도 그림에 대해 생각하려 했고, 매일 작품을 그릴 수는 없어도 펜이라도 잡아 선을 그려보려고 했다.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별거 아닌 시도들. 그런 작은 시도들을 하며 ‘아주 거창한 마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게 되었다.

꾸준히 쌓아온 시도는 작은 관성이 된다. 그리고 그 관성으로 일어난 한결같은 몸짓과 미미한 기회들이 작은 결과물을 만든다. 그렇게 쌓인 결과물들이 기회를 잡아볼 발판이 되어준다. 뒤돌아 보면 무엇인가가 쌓여있고, 어찌 됐든 내가 만든 것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게 무어라고. 형체를 갖춘 선명한 증거들이, 형체 없이 흐릿했던 자신감에 든든하게 달라붙는다. 어쩌면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것보다는 분명 나았다.

그때부터 꾸준히 고민할 힘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확신은 없지만 계속해서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많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그린다. 나를 정의해 보려는 고민들이 종유석 마냥 얇게 쌓이고 굳으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위로 솟아오른다. 그 위에서 나는, 기회가 똑떨어진 날에 조금 더 높은 위치에서, 조금 더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붙잡을 수 있었다.

사실 내심 이런 오기도 있었다. 이번에는 끝까지 해보자고. 지금껏 힘들다는 이유로,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손에서 놓아버리지 말고. 그러니까… 후회는 하지 말자고. 어쩌면 ‘후회 없이 하자’는 흔한 말의 무게가 이제야 실감 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간절함은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0의 상태’에서 무작정 오는 게 아닌 것 같다. 간절함은 정말 해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내면에 움트기 시작하다가, 몇 번의 시도로 나의 가능성과 상황이 확인되었을 때 그 에너지를 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마음이나 영감이 내게 똑떨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생각이 정리되면 먼저 움직이고 시도해 보는 게 정말 맞는 것 같다. 그 이후에야 하고 싶은 마음과 영감이 더 선명해지고 나다운 것으로 다듬어질 준비를 시작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작은 시도와 마음이 미약한 꾸준함 위에 쌓였고, 나는 이걸 엔진 삼아 열흘 동안 4점의 드로잉을 그려 그대로 지원했다. 그렇게 전시에 참여하게 됐다. 일하고 나면 지치고 의욕마저 안 나서 펜도 안 잡았었는데. 어느 순간 그러고 있는 내가 있었다. 물론 대단한 작품은 아니다. 전시에서 보면 초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나름대로 나아가보는 경험은 계속 그려보자는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에 원동력이 되어 줄 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대단한 것 없이 꾸준했으면 좋겠고, 거창한 이유 없이 그냥 해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