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실의 벽은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여있었다. 나는 정신병원 같다고 생각했다. 어떤 반은 건물에 가로막혀 창밖 너머의 풍경이 벽이었다. 우리 반에서는 다행히 운동장이 보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마저 보이지 않는다면 정말 미쳐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 쓰던 스터디 플래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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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닭장 속에 사는 닭이라고 생각했다. 학교가 주는 모이를 먹고, 특설반 독서실에 갇혀 살면서 성적이라는 알을 낳고 살고 있다고. 특설반에선 주말 없이 한 달에 딱 하루만 쉴 수 있게 해줬는데, 그때마다 선생님 눈치를 봐야 했다. 주말 아침마다 교회를 가는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다. 수학학원을 가기 위해 저녁 8시쯤 빠져나오는 시간이 유일한 내 탈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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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집. 상경한 후 첫번째 집은 심지어 사진도 없음)

그렇게 병든 닭처럼 고등학교를 보내고 서울로 대학을 왔다. 작은 창이 하나 있는 원룸에서 언니와 함께 살았다. 그땐 집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는 갖는 공간은 아니었다. 두번째 집은 투룸이었다. 그때부터 내 방을 생겨 조금씩 꾸미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바깥이 보이지 않는 내 방에 오래 있기가 힘들었다. 왠지 항상 답답했다.

(그리고 세번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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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집은 훨씬 큰 투룸으로 왔다. 거실에는 꽤 큰 창이 있고, 내 방에도 창이 생겼다. 애정을 가득 담아 집을 꾸미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집에 오래 있을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바깥의 풍경이 그다지 예쁜 것도 아니지만 창밖을 보며 행복해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 때 나는 창이 있다는 게 정말 중요한 사람이란 걸 깨달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