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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사소한 센스에서 농축된 배려와 온기를 느낀다.

개발자, 영화감독, 백수는 마침 시간이 맞아, 마침 손님이 없던 을지로 구석에 박혀 술을 마셨다.

그들은 테이블 위 골뱅이 소면과는 당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나 해댔다.

참이슬이 세 병쯤 쌓였을 때, 개발자와 백수는 ‘칸반 보드’와 ‘간트 차트’를 입에 올렸다.

둘의 차이를 몰랐던 영화감독은 그게 무어냐 물었다.

백수는 구글에서 대충 긁어온 둘의 이미지에 대충 설명을 곁들였다.

영화감독은 그 둘이 비슷한 것 아니냐 물었다.

이번에는 개발자가 답했고, 백수는 그의 답변을 아직 또렷이 기억한다.

‘비슷하긴 한데 좀 달라’라며 설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차이를 일러주는 문장을 ‘비슷하긴 한데’라고 열다니.

문장에 가벼운 온기가 서렸다.

소주를 잔뜩 마셨지만, 백수는 그 문장을, 그 온기를 아직 또렷이 기억한다.

백수는 며칠 전 기리보이가 오은영 박사와 만난 영상을 봤다.

기리보이는 가끔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난다며, 언젠가 화장실 문을 부순 적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오은영 박사의 첫 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