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게 치웠던 거 같은데 어느새 방이 더러워졌다. 한 번 더러워진 방을 다시 청소하는 마음을 갖기가 어려워졌다. 활발했던 단톡방이 조용해지면 마음이 싱숭생숭 했는데 이제 기다린다. 어느 새 내 핸드폰엔 ‘포기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생활하면서, 포기해야 할 것들을 하나 둘 적다 보니 그게 다섯 줄이 넘어가고 열 줄이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사실 정신과에 다닌 지 3년 정도 되었다. 20년 처음 코로나가 나왔을 때 코로나에 걸렸다는 걸 숨기기 바빴지만, 이제는 그냥 대놓고 ‘나 코로나 걸렸어!’ 라고 얘기 하듯 이제 마음이 아파서 다니는 병원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거에 새삼 놀란다 (물론 아직 말하는 게 꺼려지고, 들으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다)
새로운 회사에 취업한 지 어느덧 곧 한 달이 되어가고, 5일 빨리 월급을 주는 회사 덕분에 벌써 첫 월급을 받았다. 처음 입사하고 병원에 가서 펑펑 울었던 얘기가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 내가 이 얘기를 지금 적는 이유는 절대 일하기 싫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도대체 어디서 나의 눈물샘이 툭 - 터진 걸까. 의사선생님이 한 “잘 지냈어요?” 라는 말이었을까? 그 말이 뭐라고, 그냥 안부 말인데. 의사 선생님과 마주 보고 앉아 2주를 회상했다. 제주도를 가는 비행기에서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던 얘기,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죽을 거 같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던 일, 아직 어색한 회사 사람들의 웃음 소리와 타자소리를 듣고 ‘혹시 내 이야기 하면서 웃나?’ 같은 망상, 그리고 평생 나의 편이 될 거 같던 사람들이 나와 멀어지는 거 같은 느낌을 받은 일.
처음엔 탈출구 없는 세상에 나 혼자 갇힌 느낌이었다. 우울함이 극단적으로 치솟았을 땐 죽고 싶단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차라리 죽어서 나의 진짜 사람과 가짜 사람을 구분하고 싶었다. 행복한 모습만 SNS에 올린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보면 괴로웠기에 SNS를 끊고 싶다가도 하고 있는 일이 SNS 관련 업무라 끊을 수가 없다는 게 괴로웠다. 가슴이 답답해서 누군가 가슴에 바늘을 콕 찔러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건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점점 회복될 수 없는 관계로 변해버렸고, 나도 이제는 정리를 해야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지우지 못한 것들을 하나 둘 지우면서 포기하기 시작했다.
. . .
어쩌면 희망차게 계획했던 내 미래의 꿈도 포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소소하게 하나씩 포기해 나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아직 포기가 안되는지 같은 노래만 계속 반복해서 듣는데 하필 그 노래 제목이 ‘끝이라고 말하지마’ 라는 노래다. 절대 포기하지 못해서 듣는 게 아니라 정말 노래가 좋다…포기라고 말했지만, 마지막은 노래 추천으로 끝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