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내가 처음 산책을 하게 됐던 계기는 배우 하정우의 책 <걷는사람 하정우>를 읽고나서 였다. 2018년도 였나 한창 나름의 고민도 많고 뭘 해야하나 방황할 때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책을 발견했다. 좋아하는 배우가 책을 냈는데 주제가 걷기와 관련된 걸 보고 참지 못하고 사버렸다.

그 뒤로 계속 걷고 있다. 생각해보면 걷는 걸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은 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타니는데 나는 균형감각이 안좋은 지 잘 타질 못했다. 배워보려고 해도 계속 넘어지길 반복하니 어느순간 배우는걸 포기하고 걸어다녔다. 지금은 이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산책을 하면서 얻은게 정말 많다. 정신적으로, 인간적으로 많은 성장을 했다. 요즘은 밤에 고민이 있을 때 걷곤 하는데 처음 산책에 재미를 붙일 때는 날씨가 좋거나 걷고 싶을 때는 항상 나갔다. 주머니에 카드 하나만 딱 챙기고 이어폰을 끼고 산책할 때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그리고 집 근처를 막 걸었다.

근처에 있는 공원도 걷고 어릴 때 학원을 다니던 길도 걷고 발 닫는 대로 막 걸었다. 걸으면서 밀리의서재로 책도 봤따. 걸으면서 읽은 책만 해도 정말 많다. 이렇게 걷다가 힘들면 잠깐 벤치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다시 걷고 싶으면 걷는다. 그때는 하루에 2만 보도 우습게 걸었다. 걷다보면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은 산뜻해진다. 이때가 체력적으로 가장 좋았던 때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나에게 산책이 일종의 방황이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 들어와서 구체적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고 자존감은 바닥을 쳐있는 상황이었다. 뭘 해야되는지 몰랐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일단 걸었던 것 같다. 집에 있는건 답답했고 잉여롭게 누워서 핸드폰만 보는건 더 싫었다.

산책을 하면서 나와 대화를 정말 많이 했다. 나는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부터 어떤 직업을 갖고 싶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정말 많은 대화를 했다. 생각보다 나는 나에 대해 몰랐다. 어렴풋이 아는걸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하나하나 뜯어보니 내가 아는 것과 달랐다.

그리고 다행히 주변에 산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혼자 걷기 싫은 날엔 친구와 걸었다. 같이 걷다보면 친구들의 말에 얻는 위로가 있었고 나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그렇게 걷다가 벤치에서 마시는 캔맥주는 정말 시원했던 것 같다.

내가 산채을 통해 얻은게 많아서인지 고민이 있다는 사람에게 일단 걸어보라고 권한다. 이게 싫다면 일단 아무거나 해보라고 한다. 최대한 집 밖예서 할 수 있는 것으로. 나에겐 산책이 최고의 방황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사색, 방황의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요즘은 잘 못걷는게 아쉽지만 언제든 걷다보면 고민이나 뭐나 해결될 걸 알기에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