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31부터 시작된 약 1년의 서울 생활을 다시 정리해보는 시간! 누군가에게 평범해 보이지만 나에겐 특별한 시간이였다
그 때 작성한 일기, 휴대폰의 메모, 인스타그램 피드 등을 통해, 내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졌었는지 살펴보았다.
🍎21년 가을과 겨울 : 회사에 입사하고 적응하고 불안하기
2명의 과장 님과 함께 프로젝트에 투입이 되었었다. 과장님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사회생활도 많이 해보셨고, 일에 능숙하셨다. 혹시나 실수 할 까봐 엄청 긴장했었다. 예의 바르고 성실한 신입이 되고 싶어 노력했었다. 조금 헤진 옷을 입고 간 날에 무릎이 하얗다며 흉을 당하기도 했고, 친구와 약속이 있어 조금 더 꾸미고 온 날 클럽 가니? 라는 말에 내가 그렇게 방정맞은 애로 보이는 걸까 싶어 상처도 받았었다. 지금 생각하면 클럽이 어때서? 그런 것도 하나의 문화고 가볼 수도 있는 건데, 나쁜 의도로 말했다고 해도 내가 아니면 그만이야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클럽같이 사람들 틈에 섞여 즐기는 문화와 맞지 않는 사람이란걸 안다. 여러 전시회 가서 작품 감상하기, 조용한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 갖기, 한강 구경하기, 자전거 타면서 한강 근처를 달리거나 자연을 구경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때는 항상 불안했고, 그 불안은 소비로 나타났었다. 사놓고 쓰지도 않거나, 필요 이상의 소비를 많이 했었다. 부모님의 실망스러운 표정과 또래와 비교를 통해 내가 참 못나 보였다. 그렇다 보니 “돈”을 어떻게 더 벌어야 하지? 대한 생각이 컸었다. 구직 앱에 들어가서 돈을 더 많이 주는 곳을 찾아보고 그랬었다. 그 때 주변 사람들은 돈이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 수단이여야 한다. 진짜 너가 현재에 충실히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찾아보라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조언을 했다.
그 조언과 고민을 통해 또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해야 할까? 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잠시 놓았던 개발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고, 퇴근 후 기사 자격증 실기 스터디, 강의 신청 후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 그 결과로 기사 실기 자격증을 얻었다.
그렇게 퇴근 후 공부 하는 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혔다. 따로 책상이 없어 작은 책상을 사고 집에 도착하면 바로 앉을 수 있도록 셋팅 되어있었다. 공부는 현재진행형이다
🍎21년 겨울과 22년 겨울 봄 : 외로워하고 포기하고 싶고 버티기
돈에 대한 불안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불안을 공부를 통한 성취감으로 바꾸고 나니, 다음은 ‘외로움’이 찾아왔다. 서울로 올라온다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반차를 쓰거나, 주말마다 만나서 카페를 가거나 맛집을 가거나, 사진 동호회에 들어가는 등 여러가지를 했었다.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고백을 받는 등의 일이 있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외로워서 그런게 아니라, 서울 생활을 즐기기 위해서 그런거야, 혼자서 못하는 게 많으니까 생각을 했었다. 외로움을 인정하지 못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이모는 너는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따라 그 사람의 색을 따라간다. 그 사람이 기준이 된다. 그러니 말 하나 하나에 상처를 받고 눈치를 보게 된다 라고, 탱탱볼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너만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했었다. 그 땐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또 바뀌고 함께하는 팀이 바뀌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식사 시간 같은 경우를 각자 보내고 서로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 그런 팀 이였다. 그런 삭막함 속에 매일 와서 일을 하니 부품이 된 것 같았다. 낡으면 갈아 끼우면 되는 그런 나사 같은 부품…. 내 옆자리는 새로운 과장님이 앉으셨다. 엄청나게 꼼꼼한 사람이 였다. 자기 기준에 차지 않으면, 상처 주는 말이나 불평을 쉽게 이야기 하는 분이 였다.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이것저것 물어가면서 일을 했고, 과장님께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과장 님은 커피를 사주거나 밥을 사주시는 등 아직 신입이였던 나를 챙기셨지만, 과장님의 말들 중엔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님에도 옆에 있는 걸로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이명이 더 심해졌다. 이비인후과를 다시 다니기 시작하고, 쉽게 개선이 되지 않아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대학 병원 이비인후과로 진료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 때 정말 퇴사를 하고 싶었다. 6개월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다 내려놓고 청주로 내려갈까, 다시 고향으로 갈까 생각도 많이 했었다. (메모를 보니 청주로 내려가 대학교 직업 훈련 센터?에서 강의를 듣자 하는 계획을 했었다는 걸 발견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했다. 노래와 책이 주는 위로로 조금만 더 버티자 버텨보자 라는 생각으로 버텼었다. 말로 상처 받고 말로 위로를 받다니.. 참 사람은 말이 중요한 존재라는 걸 실감한다.
인왕산 저녁 산행을 갔다 온 것을 계기로 등산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서달산, 구룡산, 대모산, 안산 을 등산했었다. 몸은 엄청 힘들었지만, 산행 후 오히려 활기가 넘쳤고 자연의 고요함이 좋았고, 숨통이 트였다. 여름 태양이 뜨거워 잠시 쉬고 가을부터 관악산을 가볼까 생각 중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의 기준’이 생겼고, 내가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고 외로운 사람이고 불안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다. 또 내가 자라온 환경이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준 걸 알았다. 그러니 가족이 다시 보였다. 예전엔 왜 저러지? 싶었던 엄마와 아빠의 말과 행동의 이유를 알았고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의 어떤 모습을 내가 닮았는지도 보였다.
사람은 자신이 이런 모습을 가졌다는 걸 아는 것도, 인정하는 것도 힘들다. 정말 힘들다. 왜냐면 그 기준을 찾기도 힘들고, 그 기준에 나를 맞춰가는 것도 힘들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고 또 내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도 알게 된다. 이걸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니 주변 사람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사람인지 보였다.
그러니 옆의 과장님이 다시 보였다. 일은 잘 하지만, 항상 자신이 주목 받고 싶어하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사람이란 걸 알았다. 그게 나를 인간적으로 존중하기 보단 만만하게 보는 것도 알았다. 높게 만 보였고 그 기준을 따라가기 급급했었는데, 어느 순간 과장님이 다시 보였다. 더 이상 그 말에 상처받지 않았고, 과장 님께 할 말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했다.
프로젝트 중간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마무리 되었고, 과장님은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퇴사를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