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 절대적으로 믿게 되었나. 이 신뢰와 연대감은 어디에서부터 만들어졌을까. 지금 내가 속한 팀의 리더를 떠올리면 타고난 리더십이라는 게 분명 있는 것 같다. 단순히 팀장이라서, 리더라서, 지위가 높아서 따르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같은 방향으로 마음이 저절로 향하게 되는 것. 좋은 리더를 만나서 일하는 동안 그런 마음이 커졌다. 학생 때부터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이 되기까지 수많은 조직에 속해있었지만,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어서 형식적으로 따르는 게 아니라 이렇게 진정성 있는 마음이 생기는 건 처음이라 더 신기하다.
일을 하면서 정말로 어려운 건 사실 지식이나 기술의 영역이 아니다. 모르는 용어들이나 도메인 지식, 프로젝트의 히스토리 같은 건 몇 개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업무도 어느 정도는 손에 익으면 엄청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적당히는 쳐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관계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건 정말로 어렵다. 분명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가 막내였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정신 차려보니 연차는 쌓이고 점점 쥐고 있는 히스토리가 많아지고, 새로운 사람들을 더 많이 맞이하게 되는 위치에 와 있을 때, 이제 내가 내 할 일만 제대로 하는 것 이상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되면서 관계가 점점 더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다.
함께 일하는 리더는 이 어려운 걸 참 잘 해내는 사람이다. 옹졸하고 비좁은 마음을 지닌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든다. 일의 완성도의 기준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한 일이 내 맘 같지 않을 때 사실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분명 리더의 눈에도 이 상황이 다 보였을 텐데, 그는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 “충분히 맡은 일을 잘 해내주고 있고, 남은 10% 정도만 시간을 주면 더 잘 해낼 것”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10% 부족한 부분에 대해 한숨짓고 있을 때, 그 분은 10%의 더 나아질 부분을 본 거다. 그리고 오로지 사람이 아니라 일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 사람이 이 일을 대체 어떤 식으로 했는지, 100%를 다 쏟은 게 맞는지 의심하는 게 아니라, 일의 결과물에서 수정이 필요한 부분만 딱 짚어서 알려줬다. 이런 태도는 누구에게도 같았다. 그걸 보면서 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것 같다. 은연 중에 내가 일하는 방식이 더 맞다고, 혹은 내 기준에 맞지 않다고 타인의 노력을 쉽게 평가해버린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반대로, 내가 실수를 하게 되었을 때에도 리더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그래서 쪽팔리긴 하지만 숨기지 않고 이슈를 빠르게 공유할 수 있었다. 나를 탓하는 게 아니라 이슈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마다 번아웃 직전의 순간, 내게서 불필요한 업무는 털어주고 나의 리프레시를 걱정하며 프로젝트 종료 시점에 맞춰 휴가 일정을 잡게 먼저 배려해준 것도 참 고마운 일이었다. 여성의 날이라며 책상 위에 비누꽃 한 송이를 선물해준 것도. 이런 건 책이나 강의에서 배우기 힘든 마음의 영역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이슈가 터졌을 때에는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를 적당한 웃음으로 비틀어 전환시킨다. 이슈 앞에서 오히려 사람들이 웃고 털어버리고, 끈끈하게 모두 연결되어 으쌰으쌰할 수 있도록.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모두가 흔들리지 않게 그는 꼭 담대하게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있는 것처럼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본인이 흔들리면 다른 사람들도 같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아서일까, 꼭 그렇게 될 거라고, 우리가 그렇게 만들 것처럼 말했다. 그 말이 100% 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그 말에 기대어 여기까지 잘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