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는 삶이 성공한 삶이란다.
나의 삶은 후회가 그득히 쌓여있기에, 아쉽게도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말았다.
처음 글이라는 걸 썼을 때로 돌아간다. 내 최초의 글은 어머니나 아버지께 보내는 얼룩덜룩하고 삐뚤빼뚤한 편지일지 모르나,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기에 기억나는 최초의 글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은 차디 찼다. 한 겨울에 뜨거운 물을 쓰기 위해 커피 포트로 물을 데워야만 했고, 가스가 끊겼기에 끼니를 떼우기 위해선 부르스타에 부탄가스가 떨어지진 않았는 지 걱정하는 갈급한 환경에 살아왔다. 가끔 전기도 나가는 일이 있어서 그럴 때는 물이 데워지는 시간을 기다리기 싫어 찬물로 씻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뒤통수가 아려왔다. 채워질 수 없는 주변 환경이 어린 아이에게는 꽤나 큰 불만의 요소로 남았던 듯 하다.
물론 겉으로는 그런 불만 표출을 하면 안됐기에 착한 아이로 길러지기 위해 노력을 다 했다. 그때는 부모를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애 늙은이라는 별칭은 나의 이름과도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답게 크지 못한 점도 하나의 후회로 남는다.
내제된 불만의 표출은 오로지 글로만 나타났다. 그때 선생님의 권유로 어떤 교내 글짓기 대회를 나갔었는데, 나는 그 글짓기 대회의 취지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어차피 어른들은 이 글을 통해 아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하니 이렇게 바꿔나가야겠군!'하지도 않을텐데 내가 뭐하러 이 글을 써야하는거지? 라는 회의감이 들었다. 쓰다보니 글짓기 대회에 대한 비판 글을 쓰고 있었다. 무슨 초등학생이 그런 글을 썼는 지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그때부터 나는 태생적으로 반골이었나보다) 더 아이러니한 점은 그 글이 상을 탔다는 점이다.
학년이 올라가고 머리가 커지면서 상을 타기위한 글은 비판 글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 뒤로도 비판적 인 시선이 다분한 글을 써봤지만, 오직 내 생각만 담긴 글은 팽 당했다. 심사위원들인 선생님이 원하는 입맛에 맞춰 쓴 글들만 그 이후로 상을 탈 수 있었다. 상을 타기 위해 글을 쓰는 행위는 재밌으면서도 재미없었다.
재미가 없어져서 그 뒤로는 교내에서 열리는 글짓기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백일장이고 나발이고 선생님들이 정해놓은 심사 기준에 맞춰 쓰는 게 넌더리가 났다. 작가도 아닌 놈이 절필을 속으로만 선언했다.
수상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썼으면 나의 생각이 변해가는 과정으로 다시 볼 수 있었을텐데, 그 전에 자료들이 모두 날라가버렸다. 지금 남은 건 그때 타놨던 교내 상장 뿐이다. 이 덧없는 상장들이 그때에는 기뻤을 지 몰라도, 남는 게 없다. 글을 쓰지 못해 공백으로 남아버린 기간이 잃어버린 시간같다. 사진은 그때의 내 모습이 남아있지만 내 생각을 담아주진 못 한다. 그때의 내 생각은 어디로 갔을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은 파편화 되버려 퍼즐처럼 맞추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쓰면서 남겨보자고. 그동안 안 쓴거에 대한 벌을 받자며 쓰기 시작했다. 하루에 최소 3줄을 쓰기로. 그 무엇인가에 대해 남겨두고 기록해보기로. 삶에 대한 기억은 해석이니까.